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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8일

나라를 지킨 민초들의 꿈, 신기전神機箭



역사 속 가장 가까이 있는 왕조이면서 알려지지 않은 구석이 많은 조선. 그 이름을 차용한 신문이 조선일보다. 물론 조선일보는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찌라시일 뿐이다.

조선 역사 속 비화를 다룬 팩션 영화가 등장했다. 신기전. 용산CGV 9관에서 오후 7시 10분에 열린 시사회에 참석했다. 앞에서 2/3 가운데 줄이어서 관람위치는 최상이었다. 출연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한다고 해서 카메라를 챙겨갔는데 스크린과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찍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외장 플래시도 없는데...

영화가 먼저 시작되었다. 무대인사는 상영이 끝난 뒤에 이뤄질 모양이다. 화려하단 말이 절로 나오는 짙고 풍부한 색감이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어두운 장면에서는 흐릿하게 보이던 과거 국산영화에서 한 차원 올라섰다. 야간 씬을 흑백 비슷하게 혹은 블루 필터를 덧씌워 억지로 표현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저조도의 장면에서 컬러 색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단 영상에서는 합격점이다.

시나리오 작업에 4년을 들였다는 말대로 탄탄한 구성을 보여줬다. 상영시간 내내 몰입하게 만드는 솜씨도 이제는 세계에서 일급이다.

명에서 온 사신이 명 황제의 칙서를 낭독하는 경복궁 씬.
세종은 오른쪽에 세자를 두고 서로 꿇어 절을 한다. 충격이다. 말로만 듣던, 조공을 바치는 속국의 처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랬구나. 속국이란 게 저런 거였구나, 생각이 들었다. 명의 사신이 칙서를 낭독하는 첫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발칙한 조선은 듣거라.”

가슴 속에서 뭔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촛불집회에서 견찰의 발길질에 머리를 엊어맞는 기분이랄까. 비참하고 통탄스런 기분이 상영 내내 가시질 않았다.

암울한 시대상황이 생생한 컬러로 전해졌다. 시대는 암울했는데 스크린은 참 화려하단 말이지. 지근의 사람이 죽어도 해는 여전히 떠오르듯이 말이다. 까뮈가 이방인에서 묘사했던 장면도 그랬다. 그나마 희망을 느끼는 건 톡톡 튀는 대사의 재미들이다. 아무리 짓밟혀도 어디선가는 생명이 피어나고 사랑이 자라난다. 잘못된 정보로 전재산을 날리게 된 보부상단의 회의에서 농담이 오가고 행수 설주(정재영)는 “그래 웃자, 웃어.”라며 너털웃음으로 마무리한다.

배우들의 능청맞은 연기는 물이 올랐다. 어딘가 허술해보이던 과거의 국내 배우들이 아니었다. 정재영, 안성기 등의 연기력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고, 예쁜 줄로만 알았던 한은정도 매끄러운 연기력을 선보여 앞으로 여배우 가운데 톱으로 올라설 자질이 있음을 과시했다.

설주(정재영), 홍리(한은정), 창강(허준호), 세종(안성기) 모두 좌절할 상황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았다. 분노마저 위트로 승화시키는 장면은 힘겹게 역사의 파고를 넘은 조선 600년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듯했다.

신기전이 영화로 발굴된 것은 역사를 치밀하게 기록한 조선의 전통 덕분이었다. 기록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영화이기도 한데, 현재의 정권이 퇴진할 무렵이면 어느 정도의 기록을 남길지 의문이 들게 한다. 노통의 기록정신만은 본받기를 바란다.

사신으로 위장해서 들어온 명나라 군사들이 조정과 백성을 유린하는 것은 현재의 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때나 지금이나 힘겨운 처지에 놓였기는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속국에 비견되는 작태를 보여주는 정권의 꼴통과 군홧발, 방패로 시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견찰犬察의 행태가 스크린 속에서 겹친다. 홍리를 명에 내주는 왕실의 결정에 반발하는 설주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의 모습에 다름아니다.


영화 후반부의 신기전 발사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중신기전에 이어서 대신기전이 발사되는 장쾌한 장면은 대륙간탄도탄의 그것에 비견할 만하다. 약소국의 처지에서 군사력의 균형을 유지할 모범답안을 보는 것 같다. 국산영화를 보며 진한 감동에 젖어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마지막에 세종은 떠나는 설주와 홍리에게 큰 절을 올린다. 화들짝 놀라서 만류하는 신하들에게 세종은 이렇게 말한다. “일개 사신에게도 절을 하는데, 이 나라 백성들에게 절하는 게 허물이 될 수 있겠느냐?” 봉하리 이장이 방문객과 경비전경에게 절을 해서 화제가 된 사진이 떠오른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지도자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되풀이되는 역사라지만 그러면서 전진하지 않았던가? 20년이 아니라 560년 전인 1448년 전으로 후퇴한 듯하다. 그랬지. 얼마 전에는 우리가 개발한 신미사일이 주목을 끌었다. 어쩜 그리 닮았을까. 560년 전에도 조정은 무력했고 민초들이 나라를 지켰다. 현재는 어떤가? 정권은 모든 것을 퍼서 어디론가 바치기 바쁘고 나라를 지키려고 일어선 건 촛불들이다. 신기전은 존재만 사실일 뿐 나머지는 허구라고 한다. 존재에 이지미를 칠하듯 우리는 현재의 시국을 우리의 상상대로 현실화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이므로.
나아가자,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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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뒤에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있었다. 진한 감동을 안겨준 영화여서 배우들을 향한 환호성이 뜨거웠다.



집에 가는 길에 용산역 앞에서 한 컷을 찍었다.

7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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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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